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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당신의 주식은 순항중인가

여러분이 만약 서학개미라면 당신의 주식은 순항중입니까?     올해 미국 주식은 S&P500과 나스닥이 경쟁하듯이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너무 당연한 질문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오산이다. 미국 주식의 높은 수익률은 킹비디아로 대변되는 ‘Magnificient7(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엔비디아 등 메가테크주)’ 주식에만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 외의 주식은 별볼 일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이 태반이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AI 열풍의 기세를 몰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올해만 시가총액이 무려 1조 달러(대한민국 GDP의 절반 상회) 증가하며 날마다 주식시장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고민거리는 경제가 생각보다 냉각되지 않고 물가상승률이 더디게 떨어지는 형국이라 섣불리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난감한 상황에 있다. 근데 이 말을 일반 미국 국민들이 들으며 얼마나 동감을 할까? 소상공인 입장에서 경제가 아직 괜찮다는 말은 딴 나라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의회 증언에서 의원들에게 질타 받을 때 전해 듣는 경제 상황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고금리의 고통에서 시름하는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상하원 의원들은 중앙은행 총재를 꾸짖는 시늉이라도 해야 면목이 서는 상황이다.   양극화라는 말이 나온 지 족히 수십년은 지난 것 같은데 어느 나라, 어느 분야에서건 전혀 녹슬지 않은 테마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며 필연적인 경제법칙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말해 우연에 의해서거나 사회 시스템의 미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출판된 지 10년도 더 된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에서 이미 그 해답이 다 나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성실한 월급쟁이나 심지어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까지도 시간의 속박에 얽매여 인도(人道)를 걷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갓물주로 칭송받는 임대사업자나 자본가 또한 복리의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서행차선에 선 사람들로 묘사된다. 결국 오직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부자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쉬운 예를 들면 내가 독보적인 브랜드 하나를 만들어 프랜차이즈화를 시킨다면 부의 축적과 나의 시간과는 별개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훨씬 용이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Magnificent7’과 여타의 기업들의 차이는 부의 추월차선에 도달했는지 그렇지 못한지 여부에 있는게 아닐까? 애플이든, 마이크로소프트든, 아마존이든, 구글이든 모두 구독경제을 달성한 기업들이다.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어 구독자 한 명이 늘어난다고 기업 입장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은 사실상 없으며 이는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부의 추월차선’의 최상단에 서 있는 부자와 닮아 있다. 넷플릭스는 비디오대여 업체가 전신이었으며 당시에는 물리적인 공간에 구애를 받았기에 현재와 같은 무한한 확장이 불가능했다.     굳이 테크기업이 아니더라도 성공 사례가 적지 않다. 못생긴 신발로 조롱받던 ‘크록스’ 주가가 고공행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신발에 ‘지비츠’라는 액세서리를 달 수 있도록 하면서 기업가치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었다.     아직 당신의 주식이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그 주식이 부의 추월차선에 서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대석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주식 순항 올해 주식 경제 상황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2024-03-12

[한국은행 칼럼] 세계화의 흐름과 개인의 역할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장기화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전 세계로 이어지던 공급망을 단절하고 자국 중심의 산업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산업에서 제조공정이 단순해지고, 더 적은 노동력만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과거와 같은 글로벌 공급망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전기자동차는 엔진, 변속기가 필요 없고 연료공급장치와 배기가스 제어장치도 필요가 없다. 노동자가 기어와 피스톤 링을 생산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저임금 때문에 제조설비를 저임금 국가에 설치할 이유가 없어졌다. 많은 자동차 기업들의 디트로이트 시대 이후 외면했던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화는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일까? 컨테이너선으로 대표되는 해상무역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화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과거 물건 중심의 세계화를 정보, 지식, 자본의 세계화로 바꿔 놓았다. 원격근무, 전자 상거래, 소셜미디어는 국경을 넘는 상호작용과 협업을 가능케 한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은 Google로 검색을 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며 ChatGPT를 이용한다. 서울의 롯데건설이 시공한 롯데타워는 한국의 도자기와 붓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어 미국의 KFP사가 설계를 하고, 영국의 ARUP사와 미국의 LERA사가 각각 토목설계와 구조설계를 맡아 완성되었다.   세계화 폭은 기존의 선진국 중심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까지 확대되면서 지리적으로도 넓어졌다. 과거보다 더욱 다양한 국가의 이익이 교차되면서 세계화의 과정이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지속 가능한 개발, 글로벌 보건 위기 등 논의의 폭도 확대되어 지구는 L. 프리드먼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평평해지고 있다. 선형의 Value Chain은 서로 엮인 Value Cube 형태로 바뀌고 있다.     대량생산 시대의 개인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였다. 교육의 목적은 의문 없이 주어진 일을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끝내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었으며, 학교에서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을 성실하게 마친 모범생은 사회에서 모범직장인이 되었다. 새로운 세계화는 개인에게 달라진 역할을 요구한다. 개인은 독특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존재여야 한다. 세스고딘은 ‘보랏빛 소가 온다’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50년 후 오늘은 무슨 요일인가?”를 계산하는 것은 위키피디아와 ChatGPT에게 맡겨 두고,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와 같은 비정형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미국에 본사를 둔 씨티은행이 필리핀에 콜센터를 열고, 세계적인 의류브랜드들이 엘살바도르에 청바지 생산을 위탁하는 형태의 세계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지식, 감정을 공유하며 문화를 전파하고 포용하는 세계화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세계화는 ‘트롤리 딜레마’ 문제를 전 지구적으로확장시킬 것이며 개인은 더욱 복잡해진 도덕적 가치와 원칙 사이의 갈등을 풀어가야 할 숙제를 안게 될 것이다. 2024년 버전 세계화는 창의적이며 차별적이어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개인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김태현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세계화 개인 버전 세계화 저임금 국가 글로벌 공급망

2024-01-02

[한국은행 칼럼] 사모대출, 사채의 진화

최근 금리상승에 따른 자산손실 등으로 은행들이 신용공급을 줄이면서 기존 대출의 차환이 어려워지자 저신용·저수익 기업들이 사모대출을 대안으로 찾고 있다.   그럼 은행을 대신하여 기업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사모대출은 무엇인가? 사모대출은 펀드가 연기금, 보험사 등의 기관투자가로부터 투자자금을 모집하여 이를 기업들에게 차입인수(leveraged buyout), 리파이낸싱 등의 용도로 직접 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사모대출의 90% 이상이 부채수준이 높은 B-이하 등급의 중견기업(middle market)에 취급된다. 사모대출이 선진 금융시장인 미국에서 은행을 대신한다고 하니 첨단 금융상품으로 보여지지만 본질적으로 한국의 사채와 비슷한 컨셉←트다.   금융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주요 차입 주체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모대출과 관련한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첫째, 금리상승 등으로 사모대출 기업의 채무상환능력 저하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모대출은 변동금리로 취급되고, 금리 수준이 은행대출 및 회사채보다 높아 금리상승시 차입 기업의 이자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과거에는 사모대출 기업의 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이 3~4배 수준이었으나, 금리상승이 본격화된 2022년 이후 동 비율이 하락세를 지속하여 최근에는 2배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 만큼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대출총액 대비 향후 2년 내 만기도래 금액 비중이 30% 수준으로 내년부터 원금상환이 늘어날 계획임에 따라 사모대출 기업의 채무불이행이 늘어날 전망이다.   둘째, 부실 위험 증대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을 기대한 투자자금이 사모대출펀드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어 사모대출의 잠재부실 규모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사모대출의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하락건수/상승건수)은 금년 2분기 2.2배에서 3분기 4.8배로 가파르게 높아졌으며, S&P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마일드한 경제충격(수익 10% 하락, 기준금리 0.5%p 상승)에도 사모대출 기업의 46%만이 양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투자자금 유입이 지속되면서 대출처를 찾지 못한 미집행 약정액(드라이파우더)이 증가(전년말 대비 9%)함에 따라 관련 펀드간 대출경쟁이 심화되어 부실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보다 완화된 조건으로 자금이 대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사모대출은 소프트웨어 및 헬스케어와 같이 무형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에 대한 익스포저가 커 해당 부문의 부실 확대시 투자자금의 회수가 제한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M&A가 성행하던 시기에는 사모대출의 60% 이상이 차입인수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중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 및 헬스케어 부문으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사모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소프트웨어와 헬스케어 부문의 상당수 기업들이 영업수익을 통한 이자지급도 어려운 상태이며, 해당 섹터는 여타 부문에 비해 금년 상반기중 신용등급의 하락조정이 많았다. 산업 특성상 소프트웨어 및 헬스케어는 매각 가능한 자산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부실 확대시 사모대출 자금의 회수율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모대출은 기관투자가로부터 장기로 자금을 조달하여 장기로 빌려준다는 점에서 만기불일치 위험이 낮고, 유연한 계약을 통해 위기시 차주와 대주간의 긴밀한 협력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사모대출은 근본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차주를 대상으로 취급되며, 기대와 달리 대규모 부실 발생시 차주에 대한 안정적인 자금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거 경험과 같이 금융위기는 인간의 오만과 무지로부터 발생하였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엄태균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사모대출 사채 사모대출 기업 확대시 투자자금 투자자금 유입

2023-12-05

[한국은행 칼럼] 고금리와 채권 자경단의 귀환

현재 미국 금융시장의 화두는 단연코 “장기금리 급등”일 것이다. 최근 10년물 국채금리가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5%를 상회하는 등 장기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금리상승의 배경에는 연방정부의 막대한 부채규모와 재정적자 문제가 대표적인 원인으로 거론된다.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돌아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채권 자경단이란 인플레이션이나 정부의 재정적자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특정 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상승(채권가격 하락)할 가능성이 있을 때 공격적인 국채매도를 통해 수익률을 올리는 세력을 의미한다.   실제 2022~2023회계연도 기준으로 연방정부 부채는 33조6000억 달러며 재정적자는 1조7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GDP의 6.3% 수준으로 전년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팬데믹 당시인 2021년 2조7800억 달러 이후 가장 크고 그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적자규모다. 이같은 재정적자는 막대한 부채로 메워지고 있는데 부채에 대한 순이자만 6590억 달러에 이른다. 앞으로 10년간 예상되는 순이자 규모만 10조6000억 달러로 지난 20년간 이자 비용의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지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금을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빌리는 것인데, 정부의 경우 개인과는 다르게 채권(국채)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한다. 그렇다면 왜 세금징수 대신 채권을 발행하는 것일까? 통상 경기가 악화되는 시기에는 세금을 올리기가 어렵고, 또한 세금은 국민의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정치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채발행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빚을 더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득에 비해 부채가 많으면 위험해지는 것은 개인이나 정부가 다르지 않다.     또한 국가 부채는 한번 늘어나면 계속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지출을 늘리는 경우 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빚이 많은 사람에게 높은 대출금리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원금과 함께 높은 이자도 상환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진다. 국채발행이 야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시중 유동성이 국채로 몰리면서 민간이 사용해야 하는 자금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국채발행으로 민간 자금시장 금리가 오르고 민간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부른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지출을 늘려 경제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려는 것인데, 민간투자가 줄어들게 되면 그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장기금리 상승은 금융시장과 미국경제에 큰 위협이 된다. 과거 저금리 시절에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이 기존 부채를 차환할 때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투자를 감소시키고, 실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높은 국채금리는 각종 차입비용(모기지, 신용카드, 자동차구매 대출 등) 상승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전반적인 경제의 활력을 둔화시킨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강한 실물경기뿐만 아니라 정부의 높은 재정지출로 인해 구조적으로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의 장기금리 상승을 둘러싼 경제적 불확실성 증가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구자천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구차천 차장 고금리와 채권 자경단

2023-10-31

[한국은행 칼럼] 꺼져가는 인플레이션 불씨에 기름붓는 국제유가 오름세

요 주유할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매번 갈 때마다 기름이 계속 오르는 게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네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간판에 갤런당 3달러80센트 수준까지 나타나고 있고 미 서부지역은 이미 5달러를 넘은 곳이 많다고 한다. 국제유가(WTI기준)로 본다면 금년 6월에만 배럴당 67달러 수준이 어느새 90달러를 상회하더니 조만간 10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최근 유가의 강세는 사우디가 7월부터 단독으로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시행한 데다 러시아도 8월부터 자발적 수출 감축을 공언함에 따라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가 촉발되면서 시작됐다. 9월 들어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과 수출 감축 시한을 금년말로 연장하고 중국 또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국제유가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됐다. 현재 주요 전망기관들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으로 인해 연말까지 공급부족이 예상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유가의 상승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키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이슈 등과 맞물려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4.5%를 상회하는 등 2007년 이후 16년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5%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JP 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세계가 7% 금리에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으로 불안심리를 증폭시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유가가 오를까? 국제유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지는 앞으로의 수급여건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유가 상승세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을 이어가더라도 Non-OPEC 국가들은 원유생산 확대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Non-OPEC 국가의 원유생산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68%를 차지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빼더라도 58%에 달한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호전되면서 이들 Non-OPEC 국가들은 생산량을 늘릴 유인이 강해진다.     또한 OPEC 회원국 중에서도 최근 수년간 생산 확대를 시도해온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의 국가들은 증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만약 여타 산유국들이 적극적으로 증산하면 사우디와 러시아가 시장 점유율 상실을 우려하여 감산을 완화할 소지도 있다.     더불어 최대 원유 수요국 중 하나인 중국 경제가 여전히 부동산시장 부진 등으로 경기회복이 더딘 모습이고, 미국도 높은 금리로 인해 성장세 지속에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앞으로 원유수요가 과거처럼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어찌되었든 유가상승은 최근 안정되어가고 있는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고 연준의 통화긴축기조 종료 기대를 약화시키는 악재이다. 다행스럽게도 금년 초까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근원물가상승률이 하반기 들어서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필자도 미국에 온 이후 렌트에 민감하기 때문에 늘 시장 상황을 지켜보지만 렌트가 지난해에 비해 두드러지게 하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간 근원물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주거비 물가가 확연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유가만 안정된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의 변동성이 워낙 높은 만큼 지금의 상승세가 잠잠해지고 세계경제에 가장 큰 근심거리인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기를 기원해본다. 노진영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인플레이션 국제유가 국제유가 상승세 인플레이션 압력 인플레이션 우려

2023-10-03

[한국은행 칼럼] 크게 낮아진 물가 오름세

최근 물가 오름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지난해 6월 9.1%로 40년래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전년동월대비)이 금년 6월에는 3.0%로 크게 둔화되며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오름세를 보였다.     또한 소비자물가에서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Core CPI) 상승률도 4.8%로 20개월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였다. 물론 식료품, 외식, 각종 서비스 등의 가격이 아직 너무 높아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높을 수 있지만 공식적인 물가 오름세는 지난해 정점 이후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이다.   이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크게 둔화된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가격의 큰 폭 하락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6월 휘발유 가격은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의 경우 갤런당 6달러를 상회하였고 전국 평균(AAA기준)으로 봐도 5달러 수준까지 급등하였다. 현재 가격이 3.5달러 정도이니까 단순히 휘발유 가격만 약 28% 하락하였다.   그리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중고차 가격도 최근 공급차질 등이 완화되면서 전년 동월대비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소비자물가지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임대료(rent)와 자가주거비(OER; Owners’ Equivalent Rent)도 오름세가 완만하게 둔화되는 모습이다.   시장은 환호했다. 6월 CPI 발표 직후 주가는 상승하고 금리는 하락하였으며, 미 달러화는 약세를 보였다. 그동안 시장심리를 짓누르던 연준 긴축 경계감이 물가상승률 둔화로 다소 완화되면서 주가(S&P500 기준)는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하지만 향후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가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우선 국제유가가 6월말 이후 재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5월말 이후 배럴당 70달러(WTI선물기준) 내외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 및 러시아 등 OPEC+의 원유생산 축소, 중국 경기부양책 기대감 등으로 80달러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흑해를 통해 곡물을 수출할 수 있는 ‘흑해곡물협정’을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종료하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을 공습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크게 상승한 점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에 따른 기상악화도 식량가격의상방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노동시장이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노동집약 서비스 물가를 중심으로 근원 인플레이션의 둔화가 더디게 진행될 수 있는 점도 변수이다.     종합해 보면, 물가 오름세가 둔화되는 디스인플레이션 가속화로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 종료에 근접했다는 기대감이 증가하고 있으나, 연준 인플레이션 목표(2%) 달성이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 수준을 향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정책을 제약적으로 유지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더 긴축적일 준비도 되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낙관적인 시장기대가 조정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에도 유의할 때이다. 윤창준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오름세 물가 물가상승률 둔화 물가 오름세 근원 소비자물가

2023-08-01

[한국은행 칼럼] 캐나다 단풍잎과 한강의 기적

캐나다가 뜨겁다. 급락하던 집값이 반등하고 소비는 견조하며 실업률은 낮다. 0% 수준이던 금리를 4% 중반대로 올려놓았음에도 경제활동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 이에 캐나다 중앙은행은 중단했던 금리인상을 다시 시작했고 필요할 경우 더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전달했다. 무엇이 캐나다 경제를 과열로 이끌고 있을까?   답은 적극적인 이민 정책에 있다. 최근 캐나다 인구는 4000만명을 넘어섰다. 작년 캐나다 인구증가분의 75%가 이민자인데, 2036년경에는 인구의 30%를 이민자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민자의 대부분이 숙련노동자라는 점도 중요하다. 캐나다는2025년까지 145만명의 이민자를 받을 계획을 작년에 발표했는데, 이중 약 60%를 숙련 노동자에게 할당했다.     이러한 이민 정책 덕분에 은퇴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노동가능인구가 증가하고 취업자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노동시장에 참가해 얻은 소득으로 소비를 하고 주택을 구입한다. 이는 다시 재화 생산과 주택 건설로 이어지면서 일자리가 생겨나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고금리에도 캐나다 경제를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이민자들이 맡고 있다.     캐나다의 성장은 한국과 비교된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재차 낮췄다. 지난해말 제시했던 1.7%에서 두 차례 수정되면서 낮아진 것인데, 한국이 2%보다 낮게 성장했을 때는 글로벌 위기나 침체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러한 암울한 전망은 부동산가격이 높고 부채의 대부분이 변동금리인 상황에서 고금리가 한국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상당 부분 기인한다. 한국은 미국만큼 금리 수준을 올리지도 못했고 금리인상 기간도 짧았다.     그럼에도 금리 상승이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주택가격 하락과 맞물리면서 전세시장이 타격을 받는 등 가계 부문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기업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데 단기로 조달해 장기로 투자하는 상업용 부동산,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 사업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 수익성이 낮음에도 저금리 덕에 연명하던 한계기업들도 고금리가 지속되면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저성장이 비단 고금리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은 이미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만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장기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 연금, 노동, 교육을 포함한 전부문에서 과거의 고성장시대와 다른 구조로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노령화와 인구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정교한 이민정책이 필요하다. 단일 민족 프레임을 고수하기 보다는 철저하게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민자를 선별해야 한다. 캐나다도 과거에는 순수한 백인 정착지를 표방하며 인종 차별적인 이민정책을 시행하다가 출산율이 하락하고 숙련 기술자가 부족해지자 이민 점수제를 도입하고 자국의 경제적 발전에 이익이 될 사람들을 선별하는 정책으로 이민정책을 변경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정부가 이민 정책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는 점이다. 이민청 설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불거진 외국인 투표권 문제와 필리핀 가사도우미 문제는 우리 정부의 이민에 대한 접근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전히 낮은 다문화 수용성도 걸림돌이다. 이민자들이 갈등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되는 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 나서야 할 때다. 김태현 /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캐나다 단풍잎 고금리가 한국경제 캐나다 경제 캐나다 중앙은행

2023-07-04

[한국은행 칼럼] 인간의 합리성과 행동경제학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시작한다.     갑에게 1000달러를 주고 이 중 일부분을 원하는 대로 을에게 나누어주되 만일 을이 받기를 거부할 경우 갑과 을은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을이 합리적이라면 얼마를 받더라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므로 수취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갑의 입장에서는 을이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거부할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고 자신은 많이 가질수록 이익이므로 가급적 최소금액만 을에게 지급하고 자신이 나머지 금액을 가지며 을도 그 금액을 받고 만족하는 것이 모두에게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험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랐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300달러에서 500달러를 을에게 지급하였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을이 300달러 수준을 제안받고도 수취를 거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개인 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효용이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고,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고 경제학에서는 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주체의 효용 및 이윤 극대화 노력은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수요-공급의 과부족이 없는 균형상태에 이르게 되며 모든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요지이다. 그러나 위의 실험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때때로 비합리적이다. 감정에 좌우되고, 편향적이며, 일관적이지 않고, 근시안적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경제학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것이다. 이러한 의문에서 태동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구체적으로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경제현상에 접목한 학문을 말한다. 이 분야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다수 배출되면서 경제학의 변방에서 주류로 편입되었는데,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만 교수가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이다. 그의 저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slow and fast)'에는 인간의 비합리적 측면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들이 나온다.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또 한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확률은 낮지만 극단적인 사건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지나친 설탕 섭취에 따른 위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확률이 현저히 낮은 비행기 추락사고나 악어·상어 등의 공격은 심각하게 걱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행동경제학은 정책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준다. 수많은 정책들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지만 모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중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살충제 살포로 인한 호흡기 또는 피부 질환의 위험을 일만분의 15에서 십만분의 15로 줄이는 것보다 일만분의 5에서 '0'으로 감소시키는 것에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을 나타내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실제로 전자가 후자보다 위험의 수준을 훨씬 감소시키지만, 사람들은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확실성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는 공공자원 할당 시 우선순위를 왜곡함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합리적인 경우에도 그 합리성에 따라 나타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복잡다기하며 사전적으로 행동의 결과를 추론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최근 ChatGPT 등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세간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간이 자칫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많아지는 듯하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듯 만약 우리가 AI처럼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라면 역설적으로 인간은 인공지능의 기계적 합리성이 대체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구자천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행동경제학 합리성 기계적 합리성 노벨 경제학상 비합리적 측면

2023-05-02

[한국은행 칼럼] ‘BANK RUN’ 은행위기의 서막

아내가 휴대폰을 보더니 멀쩡한 아이 장난감들이 반값 세일한다고 빨리 사야 한다고 야단이다. 뉴욕·뉴저지 맘카페에 핫딜이 떴다고 흥분한 모양새다. 그런데 할인코드로 ‘BANK RUN’을 입력해야 한단다.   갑자기 전날(3월 10일) 영업 중단된 실리콘 밸리 은행이 떠올랐다. 바로 기사를 검색해보니 유명 장난감 유통업체 Camp가 모든 현금을 실리콘 밸리 은행에 예치해 놨는데 이를 몽땅 잃게 되면서 현금 확보를 위해 폭탄세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서부 한 은행의 붕괴소식이 다음 날 아침 바로 체감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규제 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현재 실리콘 밸리 은행에 예치된 현금은 모두 보장받게 되었지만 이 은행위기가 언제 또다시 닥칠지 모를 일이다.     이번 은행위기는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 급변해 왔던 경제상황,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통화정책 기조 전환, 기술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이다. 시작은 2020년 초 발발한 팬데믹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팬데믹을 가장 심하게 겪은 나라이고 미국 통화정책도 어떠한 나라보다도 빠르게 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에 미 연준발 유동성이 투입되었고 시중은행 예금잔액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시중은행들은 넘쳐나는 예금을 대출로 민간에 공급하는 게 순리였겠으나 문제는 펜데믹 공포와 격리정책 등으로 대출수요가 급감했던 것이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예금을 그냥 놀리기보다는 국채, 모기지 증권 등 비교적 안전한 채권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강한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면서 통화정책은 2022년부터 긴축기조로 전환된다. 금리인상은 은행들이 늘려온 채권의 가치를 급격하게 하락시켰다.     금리인상의 여파는 예금자의 행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장기간 제로에 가까웠던 예금금리에 예금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높아진 금리를 점차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에 예금자들은 금리를 더 많이 주는 은행이나 MMF 등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게 된다. 또한 경기둔화 영향으로 기업들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예치하는 예금 규모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은행은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치가 하락한 채권을 굳이 팔 필요가 없다. 인플레이션이 나중에 완화되면 금리도 내려가면서 자연히 채권가치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8일 실리콘 밸리 은행이 예금자들의 인출요구에 부응할 현금 확보를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보유채권을 팔면서 18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 소식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게 되고 불안해진 예금자들은 서둘러 휴대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예금인출을 시도하게 된다. 결국 9일 하루에만 실리콘 밸리 은행 예금의 1/4에 해당하는 420억 달러가 인출되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미국 15위 규모의 은행은 단 이틀만인 10일 문을 닫게 되었다.   현재 규제 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은행위기의 여파는 누그러진 느낌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은행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대출 축소 현상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특히 최근 부진한 상업용부동산이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이 크게 줄어들면서 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은행위기 발 경기둔화 압력이 인플레이션을 완화시켜 통화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빠르게 종료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을 보면 시장은 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2008년 리먼사태와 같은 충격적인 이벤트 하나로 전 세계가 침체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미국 은행시스템의 리스크를 철저히 점검하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미 규제 당국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할 때이다. 노진영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은행위기 bank 시중은행 예금잔액 bank run 실리콘 밸리

2023-04-04

[한국은행 칼럼] 쿠오바디스 미국경제

아침의 루틴이 되어버린 카페라떼 한 잔을 사서 길가에 잠시 서 있는데 금발 모녀가 씨티뱅크가 어디인지 묻는다.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가면 5분도 안 걸린다고 안심시킨다. 그런데 뉴요커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고, 한국인 악센트가 강한 내가 알려줘서 그런지 엄마는 못 믿는 눈치다. 신호가 왔는데도 건너지 않고 백인 아저씨에게 다시 길을 묻더니 되돌아온다. 내 말이 맞는다고 말해주려다 나도 몰랐던 씨티뱅크가 그쪽에 있었나 싶어 혼란스럽고 자신감이 떨어져 그만둔다. 책상에 돌아와 구글지도를 검색해보니 이런 내가 맞았다. 추운 날씨에 몇 배는 더 헤매고 다닐 모녀를 생각하니 믿음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만장일치로 금리인상 속도를 25bp로 낮춘 2.1일 FOMC 기자회견, 지난해 고물가 상황이 공식화되고 연준이 이에 대응하여 공격적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파월 의장 입에서 디스인플레이션 단어가 나왔다. 그것도 무려 15번. 연내 금리인하(pivoting)까지 생각이 앞서 나갔던 시장은 환호를 보냈다.    그런 환호와 안도는 이틀 사이 실망과 당혹감으로 바뀌어 버렸다. 2.3일 고용지표(NFP)가 예상치를 2배 이상 뛰어넘는 호조를 보임에 따라 시장은 충격을 받는다. 이후 2.14일 발표된 CPI(전년동월대비)도 예상치를 상회한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디스인플레이션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늘었다. 연준 인사들도 노동시장 등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견조하고 인플레이션 완화도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더 높은 금리를 더 길게 가져가야 한다며(higher for longer) 매의 부리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에는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근원 PCE 물가상승률도 시장예상을 상회하는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시장의 유포리아는 물러나고 인플레이션 재가속, 연준 금리인상 장기화 우려가 대세가 되었다.     2월중 발표된 뜨거운 경제지표로 노파심 가득한 연준과 참을성 없는 시장 간 줄다리기는 일단락된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DSGE(동태확률일반균형)와 같은 정교한 모형을 통해 미래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관측하고 예측한다.     그러나 경제의 움직임은 확률로 표현될 뿐이고 모형이 제시하는 전망도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규범적 함의에 그칠 수 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팬데믹 이후 탈세계화, 탈분업화 확대로 물가의 끈끈함(stickiness, 경직성)도 올라간 것 같고, 통화정책 파급시차(lags)도 길어지는 등 기존 경험칙이 안 통하는 구조적 변화도 감지된다. 그래서 연준 등은 포워드 가이던스 비중을 줄이고 그때그때 나오는 데이터를 보고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Data Dependency의 태도를 강조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기술 발달로 시장은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고 기대가 앞서가니 앞날을 전망하고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정책당국으로서는 총체적 난국이다. 질문에 바로 답을 내놓는 ChatGPT 등 AI 챗봇이 인기를 끌면서 경제나 투자에 대한 전망도 AI에게 물어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AI도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학습 내용을 답으로 제시할 뿐이고, 답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그래서 더 빨리 답할 수가 있다). 불확실한 상황이 길어지면서 극단적 내러티브가 힘을 얻고 기대도 이리저리 쏠리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정책당국, 시장 모두 차분하게 시간을 조금 더 두고 변화하는 추세를 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요즘 장년층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다시 나온 학창 시절 ‘슬램덩크’에 열광하고 있다. 등장인물 중 치열한 농구코트 안에서도 코트 밖을 보며 승패를 떠나 경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윤대협’의 명대사를 소개하며 끝낼까 한다.     “아직 당황할만한 시간이 아니야.” 박주하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미국 쿠오바디스 물가상승률도 시장예상 디스인플레이션 가능성 디스인플레이션 단어

2023-02-28

[한국은행 칼럼] 연준과 시장의 줄다리기

2023년중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향후 연준(Fed)의 정책방향’일 것이다. 지난 한해 연준은 40년래 최고치를 기록한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여 정책금리를 7차례에 걸쳐 0~0.25%에서 4.25~4.5%로 425bp나 인상하였다. 국제유가 파동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를 상회하던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를 제외하고는 연준의 이례적으로 빠른 큰 폭의 금리인상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금년중에 연준이 추가적으로 얼마나 언제까지 정책금리를 인상할지, 이에 따른 최종금리 수준은 얼마일지, 그리고 얼마동안 최종금리를 유지할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연준은 금리를 추가 인상한 뒤에 그 수준을 연말까지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시장이 타이트한 데다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높아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억제하기 위해서는 긴축기조를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지난 12월 FOMC 회의에서 연준은 정책금리를 5.0~5.25%까지 인상한 이후 금년말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전망하고, Powell 연준의장도 연내 금리인하는 논의대상이 아님을 누차 강조하였다.     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연준과 다른 듯 하다. 시장참가자들은 연초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을 대체로 예상하고 있으나, 연준의 전망과는 달리 1~2차례 각 25bp 추가 인상으로 최종금리가 상단기준 4.75~5.0%에서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한 일부 시장참가자는 연말에 가서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한다. Powell 의장은 미국경제가 경기침체를 피하고 연착륙하는 길이 좁기는 하지만 존재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기관들은 그간의 금리인상 누적효과 등으로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금년중 경기침체가 발생하고 노동시장도 위축될 경우 연말경 연준이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시장가격(금리선물)에는 연준이 연말까지 25bp~50bp 인하하는 것을 이미 반영하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2%)을 향해 둔화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1970년대 성급한 정책 완화로 인플레이션이 재차 확대되었던 정책실패 경험을 현재의 연준은 매우 경계하고 있다.     또한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주가는 상승하고 금리는 하락하는 등 금융여건이 크게 완화되었는데 물가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연준인사들의 적정수준보다 정책금리가 낮은 과소긴축보다는 그 반대인 과잉긴축이 낫다는 언급도 공감되는 측면이 있다.   결국 관건은 경제지표로 보인다. 하지만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빠르게 둔화될지, 노동시장과 경기의 하강속도는 어떠할지,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을지,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떻게 전개될지 등에 대해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연준과 시장의 줄다리기도 당분간 이어지겠으나, 한쪽으로 치우친 기대가 급격히 조정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에도 유의할 시점이다. 윤창준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줄다리기 연준 powell 연준의장 연말경 연준 추가 금리인상

2023-01-31

[한국은행 칼럼] 더 많이 빌려 더 많이 쓰다

미국의 정부부채 규모가 한도에 거의 근접했다.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정부는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물론 재무부가 긴급조치를 발동해 저축계정기금 등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긴요한 지출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당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1조 달러짜리 동전을 주조해 부채를 갚을 수도 있으므로 미국이 파산에 이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제금융시장도 부채한도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부채한도가 증액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부채한도 문제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까지 이어졌던 2011년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다양한 비관적 시나리오가 난무하였지만, 결국 양당은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데 합의하였다. 미 국채 이자는 제때 지급되었고 원금은 예정대로 상환되었다. 부채한도는 거의 매년 문제가 되었지만 미국이 실제로 파산에 이른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이번 정부 부채한도 증액 과정은 지난번보다는 좀 시끄러울 것 같다. 부채한도 증액을 위해서는 하원과 상원의 합의가 필요한데,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하원의 다수당이 공화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비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부채한도 증액을 대가로 지출 삭감을 요구하고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반대해온 공화당이 부채한도 증액을 대가로 동 법안의 축소를 요구하면서 양당 간의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부채한도 협상이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부채한도가 증액될 때까지 미국 정부의 대응은 통화정책 및 단기자금시장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채한도 도달로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빌리지 못한 재무부가 연방준비제도에 예치된 현금을 인출하면, 민간에는 그만큼 추가적인 유동성이 공급된다. 이는 양적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효과를 의도치 않게 상쇄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부채한도 증액 이후에는 이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재무부가 연방준비제도 예치금을 다시 쌓기 위해 미국채 발행을 늘림에 따라 민간부문의 유동성이 흡수된다. 이 경우 단기금리가 일시적으로 급등하면서 단기자금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심할 경우 2019년 9월과 같이 단기금리가 정책금리 수준을 상회하는 일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복잡한 일들을 겪지 않으려면 의회에서 빨리 합의해서 부채한도를 증액해야 한다. 더 나아가 주기적으로 증액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채한도를 충분히 늘려놓거나 부채한도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도 좋아 보인다. 어째서인지 악마의 꼬임에 말려든 기분이다. 미국이 부채가 저렇게 많으니 덜 쓰게 하고 덜 빌려가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이 빌려서 더 많이 써주기를 바라고 있다. 결말을 알고 있는 연극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더 많이 빌려서 더 많이 쓰겠다는 뻔한 결론에 도달할 테니 재미없고 진부한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조금 앞당겨서 연극을 마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태현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부채한도 증액 부채한도 문제 부채한도 도달로

2023-01-03

[한국은행 칼럼] 신뢰와 깨어진 꽃병

신뢰는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일컬어진다. 옥스퍼드 사전 등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네트워크로서, 그 사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규범, 제도 등을 의미한다”고 정의된다.     이에 비춰보면 신뢰는 비록 사람들에게 강제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제력이 있는 법규만큼이나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가계, 기업 및 정부가 어우러진 경제활동은 사회현상의 하나이므로 신뢰는 경제활동을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뢰가 경제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근자에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한 거시경제 관련 주요 이벤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미국의 경우 연준은 금년 상반기부터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상해 왔다. 이로 인해 경기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책금리 인상 중단에 대한 요구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 파웰 의장 등 연준의 주요 인사들은 높은 물가상승률이 안정되는 모습이 확인될 때까지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견해를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연준은 정책집행 초기에 제시한 물가안정에 대한 공약을 지킴으로써, 가계와 기업의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만들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민간이 미국 경제가 장기에서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는 이른바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물가목표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와 같이 궁극적인 물가안정 달성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확고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실업 등 경제적 비용을 덜 치르고도 경기 및 물가 안정을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한편, 영국의 경우에도 영란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하며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트러스 정부가 지난 9월에 430억파운드(약 69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점을 밝히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감세 정책은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유동성을 줄이려는 금리인상 정책과 서로 상충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정책당국이 이처럼 상충된 정책을 병행 추진함에 따라 민간은 정책당국의 물가안정 의지가 ‘공약이 아닌 공약’으로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 훼손으로 연결되면서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중심으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후 민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감세 정책을 제안한 트러스 총리가 퇴진하고 영국 정부는 동 정책을 철회하였으나, 이후에도 영국 연기금 펀드의 부실 우려 등과 같은 여진이 이어지며 금융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민간의 신뢰 여부로 대서양의 양편에 위치한 두 경제 대국의 희비가 엇갈린 모습인데, “꽃병이 깨지면 다시 붙일 수는 있으나 예전과 똑같은 꽃병이 되지 않는 것처럼 신뢰도 그러하다.”라는 경구는 정책입안자들이 한 번쯤 음미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김태경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신뢰 꽃병 정책금리 인상 신뢰 훼손 물가안정 달성

2022-12-06

[한국은행 칼럼] 킹달러의 귀환

세계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1980년대 이후 약 40년 만에 찾아온 고물가에 미국은 강력한 긴축정책에 돌입했고 이는 달러의 초강세, 이른바 ‘킹달러’ 현상을 부추기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지만, 다른 나라들은 미 연준의 급격한 긴축정책으로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불똥을 맞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달러가 모든 자산의 피난처(safe heaven)가 된다.     미국이 금리를 높일수록 전 세계의 자금은 점점 더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시장에서의 달러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경제 역시 예외일 수는 없어서,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원화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율 변동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환율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방향성(상승 또는 하락)에 대한 기대나 각종 뉴스, 은행의 외환포지션 변화, 주변국의 환율 변동 등에 따라서 움직인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면 환율이 오르기 전에 미리 달러를 매수해 향후 차익을 누리고자 한다. 이러한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릴 경우 일시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게 된다. 또한 각종 뉴스는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쳐 원달러 환율을 변동시키기도 한다.     이 밖에 은행의 외환포지션 변동도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데, 외환포지션(외화자산 - 외화부채)이 매도초과(외화부채 > 외화자산) 혹은 매입초과(외화부채 < 외화자산)의 한 방향으로 크게 노출될 경우 포지션 조정을 위한 거래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 환율이 변동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대외거래, 거시경제정책, 생산성 변화 등이 있다. 환율은 상품의 수출입, 서비스거래, 자본거래 등 대외거래의 결과에 따라 변동한다. 대외거래의 결과 국제수지가 흑자를 보이면 외환의 공급이 늘어나 원화가치가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하는 반면 국제수지가 적자를 보여 외환의 수요가 늘어나면 원화가치는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 한다.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정책도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면 통화공급이 감소하여 외국의 통화량에 변화가 없다면 원화의 상대적인 공급이 줄어들어 환율이 하락한다. 이 외에도 한나라의 생산성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향상될 경우 해당 통화의 가치는 올라간다. 한 국가의 생산성이 개선되면 더 싼 값에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되므로 국내 물가가 하락하거나 자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해 자국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좇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높아진 이자부담으로 허리가 휜다. 이젠 고물가가 문제인지 ‘킹달러’가 문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고물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면 된다지만, 통화가치 급락은 자칫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달러가치 급등으로 아우성이지만 정작 미국은 고환율로 인한 다른 나라의 고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냉혹한 글로벌 경제논리에서 미국에게 킹달러에 대한 책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은 투자손익과도 직결되는 환율 변동요인을 스스로 점검해보고 환율위험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자천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킹달러 귀환 외환포지션 변동 원달러 환율 환율 변동

2022-11-01

[한국은행 칼럼] 집값과 달리 렌트 오르는 이유

세계 금융시장이 미국발 인플레이션 우려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 9월 들어서 시장은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떨어지기는커녕 전월보다 0.1%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면서 그 희망은 산산히 부서진 것 같다.   논란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이하 CPI지수)를 항목별로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주거비 증가가 눈에 띈다. 가솔린가격이 전월보다 10.6%나 떨어졌지만 CPI지수에서 32%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거비가 0.7% 오르면서 CPI 상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 주거비는 렌트 상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노동부는 CPI지수 산정시 주거비로 집값은 반영하지 않고 렌트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렌트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를 체감하고 있는 입장이다. 금년 8월 뉴욕사무소로 발령받은 이후 거주할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2년전보다 30% 넘게 급등한 렌트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비싼 렌트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 인터넷에서 매물 리스트를 보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딱 하루 고민한 후 중개인에게 연락해보면 누군가가 계약을 해버렸단다.    최근 30년 기준 모기지 금리가 7% 수준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걸 보면 모기지 대출을 이용해 집을 사는 건 정말 어려워졌다. 결국 주택구입 수요는 줄 것이고 집값은 하락압력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과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는 집값이 떨어지는 속도보다도 모기지로 집을 사는 비용이 더 빠르게 올라간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집구매 비용보다 렌트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다보니 집값이 더 떨어질 때까지 구매를 늦추고 렌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금리인상이 렌트수요를 늘려 렌트와 CPI 주거비를 오히려 상승시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렌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매매시장을 보면 최근 미국 집값이 조정을 받고 있는걸 알 수 있다. 기존 주택가격(중간값)은 7월과 8월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 집구매로 수요가 다시 이동하기 때문에 렌트도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시점과 조정 폭이 문제다. 많은 시장 전문가들은 금년 중에 렌트가 정점을 찍고 조정되리라 예상한다. 렌트 하락폭은 대체관계에 있는 집값이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달렸는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급격한 모기지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집값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매물로 나오는 주택이 많지 않아 하락세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30년만기 모기지 대출을 고정 금리로 많이 받기 때문에 저금리시기에 대출을 받은 집주인들이 굳이 떨어진 가격에 집을 팔기보다 매물을 거둬들이고 장기보유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높아진 렌트는 CPI지수에 반영되면서 미연준의 금리인상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나 최근 2년간 급증한 렌트는 CPI지수에 1~1.5년정도 지연되어 반영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CPI지수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 렌트의 경우 계약기간(통상 1~2년)동안 렌트가 유지되다가 새로 계약될 때가 되서야 현재 렌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해만해도 미 연준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높은 가솔린 가격, 경제 재개에 따른 공급 장애 등에 기인하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주거비는 임금과 더불어 대표적인 sticky price다. 한번 올라가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가격이라는 말이다. 과연 이러한 sticky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맞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려야 하는 것인가? 미 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노진영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집값 렌트 렌트 하락폭 렌트 상승 렌트 아파트

2022-10-04

[한국은행 칼럼] 자동차 서비스의 희소가치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는 “신들은 죽을 수 있는 인간을 부러워한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에 모든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라고 한다. 우리 삶이 희소하기에 더욱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적이지 않은 번역과 짧은 지식으로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가치가 있는 자원은 희소할수록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뉴욕에 계속 사시는 분들보다 잠시 여행하러 오신 분들이 뉴욕 시내 주요 관광지를 더 많이 보고 잘 알게 되곤 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뉴욕이라는 흥미 있는 장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희소하기에 더 큰 노력을 들여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각종 브랜드의 수많은 회사가 경쟁하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도 희소가치가 높은 서비스 제공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사례를 직접 경험하게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뉴욕에서 살면서 우연히 3개의 다른 회사 자동차를 직접 경험하게 된 결과다.   처음 뉴욕에 도착해서는 A사 차를 샀다. 마트에 갈 때도 차가 필요한 이곳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이겠다 싶어 중고이긴 하지만 제조사에서 보증(Certified Pre Owned)해 주는 양질의 차로 골랐다. 한 1년 정도 지나서 우연히 차 바닥을 봤더니 뭔가가 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비스 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트랜스미션 쪽에 문제가 있다며 차를 놓고 가란다. 2주일이 지나서 언제 수리가 완료 되냐고 물어봤더니 트랜스미션을 다 들어내야 한다며 시간이 더 필요하단다. 한 2주일이 또 지나서 연락이 오더니 무료 렌터카를 그제야 제공해 주겠다고 한다. 한 4주간 차 없이 지내며 1시간씩 버스를 기다리고 걸어서 배낭을 짊어지고 생필품을 사 오곤 했으나 미국은 원래 그러려니 했다.   사무실 차는 B사 차였다. 담당 직무 변경으로 차량 관리도 맡게 되었는데 정비를 할 때가 되었다. 예약하고 갔더니 엔진오일 정비 같은 간단한 정비이지만 일단 무료 렌터카를 주고 몰고 가라고 했다. 몇 번을 정비하러 갔으나 무료 렌터카의 차종만 달라졌을 뿐 나를 걸려 보내지는 않았다. 한 번은 급하게 정비할 일이 있어 담당자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내일 당장 갈 수 있냐고 문의했더니 경미한 사고가 난 렌터카가 있는데 운행에는 지장이 없으니 이 차라도 괜찮으면 와도 된다고 했다. 정비 예약하려면 한 1주일은 항상 기다려야 하는 A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사무실 차를 바꿀 때가 되어 B사와 C사 차를 같이 알아보게 되었다. 여러 개의 견적을 뽑아야 했기에 같은 회사에서도 다른 딜러 가게를 둘러봐야 했다. 일단 C사 차의 경우는 딜러와 예약 자체가 힘들었다. 한 딜러 가게는 예약이 아예 안 되어 무작정 찾아가서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복수 견적이 필요하기에 견적을 뽑아서 사본을 달라고 요청해도 거래를 하는 고객에게만 인쇄해 준다는 식의 답변을 받곤 해서 명함 뒷면에 불러주는 견적 내용을 적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B사 딜러 가게를 둘러 볼 때는 이와 달랐다. 딜러와 예약하기도 쉬웠고 한번은 기존 차를 몰고 딜러 가게에 도착했더니 정문 근무자가 차량 문을 열어주며 일면식 없는 내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견적 내용을 인쇄해 달라는 요청도 두말없이 다 뽑아 줬다.   모든 자동차 회사의 서비스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B사의 서비스는 자동차 판매 및 정비라는 시장에서 높은 희소가치를 갖고 있었다. 양질의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약간 높은 비용 지출을 아깝지 않게 했다.   경기가 안 좋더라도 가치 있고 희소한 자원에 대한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스스로 희소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현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희소가치 자동차 자동차 시장 회사 자동차 자동차 회사

2022-09-06

[한국은행 칼럼]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과 인플레이션

요즘 팬데믹의 공포는 많이 누그러진 대신 인플레이션이 시대적 화두이자 공포가 됐다. 6월 미국 소비자물가(Headline CPI)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9.1%로 1981년 11월(9.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Core CPI) 항목 내에서도 의류 등 상품 가격, 임대료 등 서비스 가격의 상승폭이 모두 확대됐다.   인플레이션이 확산 및 지속되면서 물가안정이 책무인 중앙은행들이 적극적 정책대응에 나선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준은 6월에 이어 7월에도 정책금리를 75b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는 등 긴축을 강화하고 있다.     이웃 캐나다는 미국보다는 물가상승률이 낮음(6월 8.1%)에도 캐나다 중앙은행은 7월 정책회의에서 시장예상(75bp)을 뛰어 넘어 100bp나 인상하는 울트라 스텝을 단행했다. 한편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미국 GDP 상승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Recession)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등 정책대응을 둘러싼 각종 논의 및 시장반응을 보고 있자면 경제의 변화는 금리, 물가상승률, GDP 등 경제지표들 간의 교과서적 인과관계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오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소비가 둔화되면서 물가가 잡히고 성장(GDP)도 일정 부분 둔화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중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인과관계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무미건조한 인과관계 이외에도 양념이 추가된 그럴듯한 이야기(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이를 ‘내러티브’라고 정의)를 만들어내고 이를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CPI 상승률이 전월보다 높게 나와도 예상치보다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해 진정되고 있다는 내러티브가 탄생하기도 하고,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단행했으나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다음에는 100bp까지는 인상하지 않을 거라는 내러티브가 주식시장의 안도 랠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중들 사이에 퍼진 내러티브(믿음)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거나 그러한 내러티브가 제시하는 믿음에 기대려는 행태는 대중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책당국도 대중의 믿음(기대)에 촉각을 세우고 그 방향이 정책목표에 어긋날 것 같으면 이를 수정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강구하고 각종 매체를 빌려 바람직한 믿음을 설파하려고 애를 쓴다. 연준이 자이언트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은 인플레이션 지속 기대가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잡는(entrenched)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을 제치고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른 성공의 비결이 정교한 언어 및 이를 바탕으로 한 개념, 이데올로기 등 상징체계에 있다고 했다. 법인격을 갖춘 주식회사, 신용화폐 등이 상징체계의 대표적 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도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모두의 동의(믿음) 하에 그 질서를 따른다. 대중들이 경제에 대해 믿음을 형성하고 정책당국자들이 목표로 하는 믿음을 설파하려고 애쓰는 것은 상징체계 속에서 진화한 인류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때일수록 대중들은 가급적 객관적인 인과관계에 기초한 믿음에 더 기대야 할 것이고, 정책당국도 대중의 기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믿고 기대하는 내용대로 미래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힘은 경제현상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박주하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인플레이션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인플레이션 지속 대신 인플레이션

2022-08-02

[한국은행 칼럼] 한국만큼 비싼 휘발유값

휘발유 가격이 크게 올랐다. 미 자동차협회(AAA) 기준 지난해말 갤런당 3달러 30센트였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6월 10일 기준으로 사상 처음으로 5달러를 넘어섰으며 현재는 소폭 하락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5달러에 근접한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금년중에만 거의 50% 급등하였다.     단순하게 갤런당 5달러를 현재 원달러 환율(1299.8원/$)을 적용해서 계산해보면 대략 리터당 1700원이 넘고,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은 갤런당 6달러가 넘는데 6달러만 잡아도 리터당 2060원에 가깝다. 한국의 전국평균 휘발유 가격이 2128원 정도이니, 셰일오일로 유명한 전세계 원유 1위 생산국 미국이 원유 수입에 거의 의존하는 한국과 휘발유 가격이 비슷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처럼 미국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한 것은 아무래도 국제유가가 크게 오른 데 주로 영향받았다. 작년말 배럴당 75달러였던 국제유가(WTI 기준)는 금년중 40% 이상 급등하여 현재 108달러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유가 급등을 수요측 요인과 공급측 요인으로 구분해보면, 역시 공급측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2.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는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 금지를 추진해왔다. 전세계에서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원유생산이 많은 러시아(전세계 생산량의 11% 차지, EIA)를 대체할 원유수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했으며 이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하게 되었다.     또한 OPEC 국가들도 팬데믹 직후 원유 생산을 큰 폭으로 줄인 이후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으나 점진적인 증산에 그치는 데다 일부 회원국의 경우 시설제약 등으로 증산 할당량도 다 못 채우는 실정이다. 이란과의 핵협상도 교착상태이고 리비아는 국내정치 불안으로 원유수출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다.   한편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확대를 기대하였으나 이 또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팬데믹 기간 유가 급락에 따른 기업파산 등으로 향후 유가 변동에 따른 투자 실패 우려와 증산보다는 부채관리 및 주주 배당금 지급 우선 경영 등으로 적극적인 투자 등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증산이 점진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요측 요인을 보면 코로나 진정 등으로 경제활동이 신속하게 재개되면서 여행 등 이연수요가 급증하고 산업수요도 증가하였다. 특히 최근 중국이 상하이 등의 봉쇄를 해제하고 방역조치를 완화하면서 원유수요의 추가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는 유가 및 휘발유 가격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의회에 연방 유류세 3개월 면제를 요청하는 한편 정유사들에게도 휘발유 생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또한 7월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원유 증산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도 휘발유 가격 자체를 타겟으로 하지는 않지만 L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하여 6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는 등 긴축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유가 안정을 위해서는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되면서 공급충격이 완화되거나 경기침체를 통한 수요둔화 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실제 연준의 긴축 강화 등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최근에 유가도 다소간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쪼록 경제적 비용이 큰 경기침체라는 수요충격보다는 공급요인의 해소로 국제유가가 안정되기를 기대해본다. 윤창준 /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휘발유값 한국 국제유가 급등 전국평균 휘발유 원유수입선 다변화

2022-07-05

[한국은행 칼럼]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

숲속을 헤매던 골디락스가 오두막을 발견한다. 골디락스는 죽 세 그릇을 발견하는 데, 첫 번째 아빠 곰의 죽과 두 번째 엄마 곰의 죽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웠지만 세 번째 아기 곰의 죽은 딱 적당해 맛있게 먹는다. 배가 불러진 골디락스는 너무 딱딱한 아빠 곰의 침대나 너무 푹신한 엄마 곰의 침대 대신 적당히 안락한 아기 곰의 침대를 택해 깊은 잠에 빠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경제도 과도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을 때 좋다. 금리와 환율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자산 가격은 적정한 속도로 서서히 올라주는게 좋다. 이러한 상태를 골디락스 경제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물가가 너무 높다. 주유소에서 가득 주유하기가 부담스럽고 마트에서는 카트에 물건 담기가 망설여진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두 달째 전년동월대비 8%넘게 상승했다. 이에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나섰다. 3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고 6월부터는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줄여 유동성을 흡수할 것을 예고했다.   그런데 연방준비제도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팬데믹에서 막 벗어난 미국경제가 의도치 않게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조달비용 증가가 기업 이익을 낮추어 주가가 하락하고, 높은 모기지 금리로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수 있다. 둘째 금리인상으로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 설비투자 축소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을 줄여 오히려 물가를 더 올릴 수 있다.   또한,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은 주로 수요 조절을 통해 경기의 진폭을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최근의 문제점은 상당부분 공급 부족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통화정책으로 미국-중국 갈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붕괴된 글로벌 공급망을 해결하거나, 노동시장의 불균형으로 인한 임금상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방준비제도의 움직임에도 물가가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면 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당분간 골디락스 경제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보인다. 어쩌면 곰 세마리 이야기 말미에 골디락스가 오두막으로 돌아온 곰 세마리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간 것처럼 우리도 경기침체와 맞닥뜨려야 될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연방준비제도가 민첩하게 움직여 경기침체에 이르지는 않도록 응원함과 동시에 스스로 위험 대비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저축을 늘려 위험과 싸울 힘을 길러야 한다. 또한 위험자산은 줄이고 분산투자를 통해 보유자산의 위험을 낮춰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가 임박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수 있다. 김태현 / 뉴욕사무소 과장한국은행 칼럼 골디락스 골디락스 경제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 글로벌 공급망

2022-05-31

[한국은행 칼럼] 높은 물가오름세의 정점

지난해부터 지속된 고물가로 인해 미국 내 많은 가계가 소비 지출 규모는 늘었지만 막상 실제로 그 만큼 풍족하게 소비 생활을 누리지는 못하고 괜히 씀씀이만 커진 것 같은 씁쓸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최근인 4.12일에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고물가에 지친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비자물가의 하위 지표 중에는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하고 산출하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ore CPI)가 있다. 예컨대 이 지표의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커진다면 인플레이션(Inflation) 오름세가 확대되는 기조적인 물가흐름이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의 전월대비 상승률이 1월 0.6%에서 2월 0.5%로 소폭 하락한 데 이어 3월에도 0.3%로 다시 하락하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근의 높은 물가오름세가 정점을 찍고 한 풀 꺾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다소 희망 섞인 예측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예측은 지난해부터 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여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의 기준(base)이 너무 높아진 만큼 금년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해처럼 큰 폭으로 확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저효과에 대한 기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경제동향 모니터링을 업으로 하는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이러한 예측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냉정하게 경제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 때문에 이러한 예측을 단순하게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오름세 확대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업 측의 판매가격 인상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공급자가 직면한 물가상승 압력은 경제 전반에 작용하는 추세 인플레이션(Trend Inflation)을 강화시키고 있어 기조적 물가흐름이 하락세로 반전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음으로는 지정학적 갈등 고조, 중국의 봉쇄조치 강화 등으로 공급망 제약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부품, 원료 등의 투입요소 차질로 생산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제품이 제때 시장에 공급되지 못해 해당 제품의 가격을 크게 상승시킬 수 있는데, 신차와 중고차를 가리지 않고 차량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은 공급망 제약으로 인한 대표적 부작용이다. 또한,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구인난이 지속되는 tight한 노동시장 상황이 지속되면서 임금상승률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임금은 기업의 생산비 증가를 초래하여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임금보다 빨리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근로자들의 요구 임금수준도 이에 맞춰 높아지고 있어 높은 임금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높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으로 급등한 국제원자재 가격은 미국내 물가상승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수입되는 해외생산 제품의 가격도 상승시켜 최종 소비재 수입물가도 높이는 부작용을 나타낸다. 물가오름세가 기저효과로 인해 최근의 정점에 비해서는 다소 낮아질 수 있겠으나,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단기에 빠르게 둔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며 당분간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의 물가오름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현재로서는 각 경제 주체도 높은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비, 투자 등의 경제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김태경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물가오름세 정점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물가상승 압력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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